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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책, 인상적인...

[문학] 신서중 3학년생들이 지은 <폭파전문 꼴뚜기>, 아침이슬, 2012

<<폭파전문 꼴뚜기>>는 중3 학생들이 지은 판타지 소설집이다. 2012년 당시 신서중 3학년이었던 박지현, 임재영, 조윤영, 정하민, 김영민, 인소연이 지은 단편소설들을 모았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행운과 불운이 우연히 일어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다면 어떨까. 박지현의 소설 <열여섯,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 희진과 하영은 도서부 위원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일반 도서부원들이 하는 일과 똑같지만 한달에 두 번 '운명의 도서관'에서 일하는 초급능력자이다. 둘이 하는 일은 운명법전을 뒤져 선악에 따른 상벌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들은 어떤 사건에 개입하게 될까.

학교가 폭파되었으면, 학원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많나보다. 임재영의 소설 <폭파 전문 꼴뚜기>의 주인공 재민이는 방학을 줄이겠다는 학교가 폭파되기를 바랐지만 진짜 이루어질지는 생각도 못했다. 폭파되어 주저앉는 학교를 벗어나자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명함을 내민다. 학교 폭파전문가 스컹크. 그가 바라는 대가는 5년 6개월이라는 재민이의 수명을 요구한다....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우리나라. 자살을 선택한 이들은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예로부터 자살을 하면 죽은 후에도 평안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자살을 죄악시하여 막으려는 노력이었을 거다. 임재영의 소설 <카오의 나라>의 주인공 58호 사내는 염색 공장의 노동자로 큰 사고를 당했으나 산재처리를 받지 못한다. 그는 딸에게 짐이 되기 싫어 자살을 선택한다. 자살한 영혼 '카오'는 백 년 동안 형벌을 받으며 기다려야 염라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 백 년 동안 그들이 받아야할 형벌은 다양한데 58호 사내와 71호 소녀는 학교의 화장실 변기가 되어 낮동안 아이들의 배설물을 받아내야 한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살아있는 동안 큰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 후에는 천국에 갈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염라왕의 변덕으로 지옥에 가서 형벌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도망치는데... 도망치는 카오는 어떻게 될까.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니면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존재가 있다면 누구일까. 조윤영의 소설 <운명의 감시자>는 그 존재를 그림자로 설정한다. 모든 사람은 죽은 후에는 환생의 마지막 단계로 그림자가 되는데 그림자의 주인이 운명의 상대가 되는 것이다. 평생 그를 떠나지 않으면서 그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적절한 벌을 줄 수 있다. 주인공은 매순간 감시자가 붙어있다는 사실이 갑갑하다. 그러다가 그 감시자를 떼어내는 법을 알게 되는데...

자신의 모습을 제3자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다면 자신에게 연민을 갖고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 임재영의 <최진명을 아십니까>는 최진명의 피 한 방울로 의식을 갖게 된 종이 인형이 49일 동안 최진명을 관찰하는 이야기이다. 최진명은 서열에 집착하여 위로 올라가려고 온갖 비열한 방법을 써가며 노력하지만 아이들에게 이용만 당한다. 49일 동안 종이 인형은 그가 무척이나 가엾고 애처롭다...

정하민의 <그 나무 봤어?>는 매우 싱그럽다. 이 소설이 싱그럽다는 감상은 지금의 학교가 그만큼 삭막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학교라는 존재 자체를 친구처럼 느끼는 주인공은 신비로운 동급생 황시영으로부터 학교의 심장부라는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안내된다. 그곳에 있는 커다란 나무는 학교의 생명이다. 건물도 감정과 공생하는 생물처럼 변화될 수 [있다는 데에서 상상이 시작되는 이 소설은 삭막함의 상징인 학교를 생명력이 넘치는 곳으로 탈바꿈시킨다.

남녀공학을 다니는 요즘 중학생에게 연애세포는 좀더 일찍 살아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사랑을 전할수 없어 짝사랑으로 끝내야 한다면 얼마나 아프고 안타까운 일일까. 인소연의 <짝사랑에 빠진 그대에게>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내가 사랑하는 그의 감정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떨까. 결말은 여러분이 예상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주인공의 깨달음은 크다. 어린 시절 풋사랑이 가장 아플 것 같지만 그건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억울한 영혼이, 안타까운 사정으로 삶을 마감한 영혼이 누군가의 몸을 필요로 한다면, 그래서 방심한 틈에 내몸을 빼앗긴다면 어떨까. 물론 100일이라는 정해진 시간 이후에는 되찾을 수 있지만 말이다. 김영민의 소설 <조회대 밑을 조심하라고!>는 이런 유쾌한 상상을 소설로 실현했다. 승윤이의 몸을 탈취한 영혼은 조선시대 노비로 억울하게 죽었다. 그는 100년 후에 영혼으로 깨어났지만 세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미륵불을 찾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비결을 찾으려 한다. 승윤이는 몸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진실을 밝히는 분필이 있다면 유용하기만 할까.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누가 진실한 자인지 명명백백 밝힐 수 있다면 세상은 한결 깨끗해질 것 같다. 하지만 정하민의 소설 <고양이 창고>는 누군가의 진실을 아는 게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반드시 감추어야만 하는 진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의 진실을 밝히는 건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마 주인공 은영처럼 사리분별 있는 아이가 진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친구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아이가 있다면 상처 위에 상처를 내는 것이 아니라 좀더 빨리 상처에 딱지가 앉게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9편의 소설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학생들의 문제의식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그를 유쾌하게 또는 묵직하게 맺는 결말도 모두 좋았다. 이 작가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2020.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