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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책, 인상적인...

[문학] 박지리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사계절, 2017

 

리커버 한정판으로 나온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처음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욜로욜로 시리즈는 세 권으로 나뉘어져 있어 읽기 편하다.


작가는 왜 31세라는 나이로 삶을 버렸을까. 이 전에 그의 소설 <합체>도 본 적이 있고(표지만 보고 제목을 아는 정도다. 제8회 사계절 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청소년들에게도 매우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다) 최근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훌륭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모든 작품을 읽어야지, 앞으로 나오는 작품도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마지막 소설임을 알았을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슬픔을 느꼈다. 이제 이 소설가가 세상에 없다는 공허함.. 박지리 작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혹시 지병이 있었나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2020년 1월 20일 한국일보 기사에는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출간 직후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고 써 있었다. 안타깝다. 최근 기사를 찾아보니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그가 총 7편의 작품을 남겼고 최근 사계절 출판사에서 '제1회 박지리 문학상'을 지정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2018년 뮤지컬로 상연되었다.

박지리 작가는 학교 수업이 지루해 조금씩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 작법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면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 순수함 자체였던 주인공이 악의 화신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세밀하고 촘촘한데다가 빈틈없이 꽉 짜인 스토리, 인물들의 약간씩 어긋나지만 타당성 있는 심리묘사,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결말에 900쪽 가까이 되는 분량에도 가독성이 매우 좋은 소설이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3대에 걸친 악의 기원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러너 영의 손자이자, 니스 영의 아들인 다윈 영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들이 사는 세상은 1지구부터 9지구까지 세밀하게 나뉘어 있다. 1, 2, 3 지구는 상위지구이고, 4,5,6지구는 중위지구, 7,8,9지구는 하위지구이다. 다윈 영은 1지구 최고의 학교 프라임 스쿨 재학생이다. 아버지 니스 영은 문교부 차관으로 상류층 중에 상류층 가정이다. 전반부 스토리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 친구인 제이의 추도식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니스 영은 16살에 죽은 친구 제이 헌터의 추도식을 30년째 이어오고 있다. 제이의 아버지는 과거에는 역사적인 사건,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긴 훌륭한 사진 작가였지만 지금은 치매로 기억을 잃었다. 제이의 동생 조이는 무척 소심한 남자로 7급 법원 서기였는데 그에게는 매우 대담한 딸 루미가 있었다. 루미는 삼촌 제이의 죽음에 석연찮은 부분이 있음을 알고 진실을 추척한다. 루미를 짝사랑하는 다윈은 그녀를 도우면서 진실의 핵에 점차 다가선다. 소설의 중반부에서 다윈은 살인자의 정체를 우연히 알게 되고 갈등에 휩싸인다...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다윈은 갈등을 끝내고 성장의 비밀을 가진 채로 훌쩍 자란다. 루미는 불과 반 년만에 변해버린 다윈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은 불쾌하다기보다 경외감이었다.

'불과 반 년 전 거대 지구본 앞에 서 있었을 때 세상과 평화롭게 조화를 이룬 듯했던 인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다윈은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단독자' 같았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3> 286쪽

"모두 각자의 죽음이 납득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해.(3권 289쪽)" 다윈 영은 말한다. 박지리 작가 스스로는 죽음이 납득되었을지는 몰라도 나는 아직 그의 죽음을 납득할 수 없다. 이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다면 납득이 될까.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앞으로 나올 작품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을 텐데,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가 어느 날 우연히 곧 발매될 도서를 예약 주문하는 기쁨을 상상해본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슬프다.

2020. 9. 1